분명히 좋아하지도 않고 하기 싫은 일인데도 열심히 하는 일이 있는데 요즘의 나에게는 수확하는 일이 그렇다.
우리 텃밭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잘 먹지 않지만 키우는 작물들이 있다. 수확물이 많아지는 시기에는 이런 작물들 때문에 꽤나 곤혹스럽다.
오이나 호박, 가지, 콩류들은 수확은 많이 되고 우리는 잘 먹지 않아 늘 처치가 곤란한 작물들인데 수확물 처리를 난감해하면서도 꼬박꼬박 열심히 수확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의식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맞겠지만 굳이 안 먹을 것을 왜 시간 들여서 수확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납득이 잘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주변사람들에게 나눔 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수확해서 다듬어서 갖다 줘야 하는데 수확하는 일, 다듬는 일, 배달하는 일들이 다 소소하지만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보니 돈 되는 일도 아닌데 무슨 영화를 볼 거라고 이러고 있나 회의가 들기도 한다.
뭣도 모르는 사람들은 나눔을 하는 것에 대해 '복 받으시겠어요'라고 좋은 일 하는 듯이 생각하지만 이곳에서 지인이 열명도 채 안 되는 우리다 보니 매일 나오는 수확물을 처리하기 위해 '○○ 드실래요?, ○○ 갖다 드릴까요?' 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것도 너무 자주 하게 되어 때로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참 못할 짓이 되는 것이다.
사실 정 처리가 곤란하면 텃밭에 버리거나 수확을 하지 않으면 될 일이지만 먹든 안 먹든 수확 적기인 때깔이 고운 작물을 보면 참지 못하고 수확해서 집에 들고 오게 된다. 수확물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늘 한탄을 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이 참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먹는 작물이건 안 먹는 작물이건 수확이 적으면 서운하고 수확이 많으면 난감하다. 쉽게 구하기 힘든 질 좋은 작물이기에 더더욱 텃밭에 버리고 나면 속이 쓰리다.
작물이 익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지라 수시로 가서 살피고 수시로 수확해 와야 하는데 남들은 수확 비수기라고 하는데 매일 수확해 오는 것이 고맙기도 하면서 반갑지도 않은 이 복잡한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동생이 날도 더우니 텃밭에 나가지 말고 눈 질끈 감고 수확할 것들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는데 굳이 가서 보고 아까운 생각에 수확해 오는 마음은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나름 열심히 작물들을 정리했는데 아직도 절찬 수확 중인 작물도 많아 매일 수확을 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텃밭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줘버리는데 그래도 집에 가지고 오는 것도 꽤 있다. 또 처리를 고민해 봐야겠군.
어느 경지에 도달해야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만 수확을 할 수 있을지, 과연 그런 날이 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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