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텃밭에는 자생으로 자라고 있는 비단팥이 2주 있다. 작년에 텃밭에 버린 팥 잔사들 때문일 텐데 희한하게 비단팥만 나서 자란다.
텃밭 가장자리에서 자랐기 때문에 딱히 키우지도 없애버리지도 않고 방치하고 있었는데 때가 되니 너무 잘 자라서 꽃을 피우고 꼬투리가 달린다.
텃밭 가장자리는 텃밭의 돌들을 모아둔 곳이라 작물이 자랄 만큼의 흙도 없는 데다 따로 관리하지 않아서 온갖 잡초들이 무성하기 때문에 잡초에 치여서 작물들이 잘 못 자라는 곳이기도 해서 처음 팥이 났을 때는 제대로 자랄 거라는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 가뭄으로 텃밭 안에 심긴 다른 작물들이 고사하고 말라가는 와중에 이 자생팥만은 홀로 생생함을 유지하며 어마어마하게 무성해졌다.
농장 텃밭에 가뭄으로 잎이 노랑노랑한 팥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물 한번 안 줬는데도 잎들이 푸릇푸릇 싱싱함을 자랑한다.
작년 이맘때의 팥은 벌레가 잎을 갉아먹어서 성한 잎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잎이 너덜너덜했는데 올해는 날이 가물어서 벌레 피해가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이 자생팥 잎은 아주 멀쩡한 편이다.
원래 자생 작물들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좋다고 하긴 하지만 때때로 자생 작물들의 자라는 기세는 정말 놀랍다. 고작 팥 2주가 한 평을 가득 메울 정도다.
농장 텃밭에 심어놓은 비단팥은 호박덩굴이 감고 지나가서 존재를 찾기도 힘든데 그나마 자생으로 자란 이 팥 덕분에 종자 보존은 가능하겠다. 꼬투리 달려 있는 것만 봐도 꽤 많이 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정말 수확량이 좋다면 다음부터 팥은 대 여섯 주만 키워도 될 듯하다.
자생작물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꼭 덤이 생긴 듯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은데 올해 팥들의 작황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이 자생 비단팥의 존재는 아주 기쁘다. 이대로 쭉 자라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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