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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텃밭에 비단팥과 검정팥을 심은 자리를 호박 덩굴이 덮쳤다. 작년에도 호박이 땅콩과 생강을 휘감아 농사를 망쳤었기 때문에 올해는 나름 고심하여 호박이 다른 작물을 덮치지 못하게 구석진 곳 척박한 땅에 심었는데 그런 노력은 무용지물이다. 날이 가물어서 다른 집 호박들은 다 안 좋다는데 꼴랑 5주가 작년보다 더 무성하게 덩굴을 뻗어서 비단팥과 검정팥을 심어놓은 밭을 모조리 덮었다.
이미 손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올해 팥 수확은 포기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호박잎을 수확하기 위해 호박 줄기를 따라가다 보니 비단팥 꼬투리가 보인다. 익은 것도 있고 꽃이 피고 있는 것도 있다.
위에서 보면 호박이 완전히 덮었는데도 불구하고 호박 줄기 사이사이로 비단팥 줄기가 뻗고 있다. 참 놀라운 생존력이다.
호박잎 때문에 햇빛도 못 받고 있는데도 꽃도 피고 꼬투리도 달리다니 그 생존본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점순 아주머니는 올해 날이 가물어서 팥이 알이 안 차고 납작납작하다고 했다. 마치 쌀알처럼.
아무리 비단팥이 토종팥 중에서도 크기가 작은 팥이라고 하지만 올해는 특히나 크기가 더 작아서 거의 녹두 수준이다. 점순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크기가 작아도 알이 찼으면 다행이란다. 올해는 콩이며 팥이며 제대로 자라는 게 없다고 한다. 졸지에 배부른 투정을 한 사람이 되었다.
내키지 않지만 호박 덩굴 사이에서 열매를 달고 있는 비단팥의 생존력에 경의를 표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