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한창 마늘을 심을 시기라서 곳곳마다 퇴비를 뿌리고 밭을 경운 한다. 동네 여기저기가 밭을 가는 트랙터와 경운기 소리로 시끄럽다. 우리도 마늘 밭을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 수확 매너리즘에서 기인한 텃밭 일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지라 텃밭일 하기가 싫다. 갑임 아주머니에게 우리도 마늘 밭을 만들어야 하는데 일하기가 싫어서 미루고 있다고 했더니 본인의 관리기를 빌려가서 밭을 만들라고 크게 선심을 쓰려한다. 갑임 아주머니 잘못짚으셨어요. 우리는 밭을 안 갈아요.
사실 우리는 기계 경운을 안 하기 때문에 관리기 쓸 일이 없다. 텃밭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계 경운을 안 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텃밭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경운 하라는 조언을 얼마나 많이들 하는지. 밭을 갈라는 조언을 넘어서 아예 밭을 갈아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으니 관리기를 빌려주겠다는 것은 그나마 귀여운 수준이다.
상석하대란 말이 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는 뜻으로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둘러맞추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당장의 급한 상황만 모면하려고 얄팍한 술수를 쓰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런 방식은 아주 단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라 일이 잘 될 수도 없지만 때로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데 나는 농사를 지을 때 기계 경운을 하는 것이 상석하대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텃밭을 가꾸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밭을 경운 하지 않으면 농사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항상 작물을 심기 전에 밭부터 먼저 간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 경운은 절대 하지 않는다. 사실상 우리 텃밭은 기계 경운이 필요 없고 기계 경운을 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텃밭 흙은 지렁이 분변토라서 이미 포슬포슬하기 때문에 따로 경운을 할 필요가 없다. 괜히 기계 경운했다가는 텃밭 지렁이들을 다 죽이게 되고 흙을 뒤섞으면서 토양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잘 가꾼 토양을 한순간에 다 망가뜨린다. 그리고 실제로 기계 경운을 하게 되면 토양의 입자가 작아져서 땅을 더 딱딱하게 만들게 한다. 악순환을 불러오는 일인 것이다. 마치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점점 더 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처럼. 기계 경운은 화학 비료와 마찬가지로 한 작기의 농사를 위한 임시변통일 뿐이다.
나는 무슨 일이든 올바른 방법으로 차근차근 제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작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고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땅을 망가뜨리지만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관행농업이 때때로 많이 안타깝다. 왜 작물이 잘 안 자란다는 걱정을 늘 달고 살면서 당장의 급한 불만 끄려 하는 건지. 인내심을 가지고 초기에만 고생하면 나중에는 더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밭을 만드는 것은 일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간단하고 쉽다. 밭을 만들 곳에 미리 식물잔사와 커피찌꺼기를 쌓아 부숙 시키는데 밭을 만들 때에는 부숙 되지 않은 부분을 걷어내고 잘 부숙 된 흙을 펴서 정리만 한다.
마늘밭을 만들 곳은 봄부터 식물잔사와 커피찌꺼기를 모아서 쌓아둔 곳이다. 위쪽 식물잔사들은 옆으로 치우고 부숙 된 흙은 고르고 펴서 대충 밭 모양으로 만들면 끝이다. 시간도 얼마 안 걸리는데 이걸 하기 싫다고 게으름을 피웠다.
완성된 마늘밭을 보고 있으니 모양도 그럴싸하고 흙도 부슬부슬 좋은지라 나름 흡족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