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콩을 여러 종류로 심긴 했지만 콩은 작년에 처음 심어본 거라서 콩 농사에 관해 아는 것이 쥐뿔도 없다. 게다가 우리는 콩을 심은 이후 풀 몇 번 매주는 것 외에는 별도로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서 키우다 보니 콩을 키우는 방법이나, 잘 키우기 위한 노하우도 아는 것이 없다. 콩을 많이 먹는 것도 아니라 수확되는 콩도 다 못 먹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실제로 작년에 수확한 콩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콩 수확량에 목을 매지도 않는다. 수확되는 대로 먹으면 되지 하고 속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대충대충 콩 농사를 짓고 있는데 올해는 가뭄이라는 복병을 만나 콩 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 게다가 기온이 높아서 그런지 콩이 너무 빨리 익는 것 같다. 작년에는 11월에 청태를 수확했는데 올해는 벌써 수확해야 하는 청태가 하나 둘 나온다.
귀족서리태나, 청태, 선비콩, 아주까리 밤콩 같은 토종 콩들은 늦게 수확하면 탈립이 되어 유실되는 콩이 많아진다. 작년에 점순 아주머니에게 듣기로는 콩 꼬투리가 대부분 갈색이 되고 콩 꼬투리가 하나라도 터지기 시작하면 수확해야 된다고 했다.
요즘 배추와 무에 신경을 쏟느라 한동안 콩을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텃밭을 둘러보던 동생이 청태가 수확할 때가 되어 간다고 나를 불렀다. 예상치도 못했는데 어느덧 익어서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콩들이 꽤 있었다. 선비콩 수확이 끝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지금부터 청태를 수확하게 되면 청태 수확이 끝나고 귀족 서리태를 수확해야 되고 그다음에 선풍콩과 청자 5호 서리태를 수확해야 되니 주야장천 콩 수확만 하게 생겼다. 지금껏 콩농사에 별 힘을 안 들였었는데 작물 키우는 것과 시기가 겹치고 콩의 양이 많다 보니 수확하고 탈곡하는 것도 꽤 일이다.
우리는 콩은 아예 사 먹어 보질 않아서 콩 맛을 일체 모른다. 우리가 키운 콩들이 다 맛있긴 한데 그것도 우리가 키워서 맛있는 건지 아니면 콩 품종이 맛있는 콩인 건지도 잘 모르겠다. 햇 콩이 나올 거라고 작년 콩을 나눔 하면서 소진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가 먹은 콩보다 남들에게 나눠준 콩이 더 많을 것 같다. 도대체 콩 농사는 왜 짓고 있는 건지.
콩 수확이 일이 되다 보니 콩을 많이 심은 것이 후회된다. 우리가 많이 안 먹으니 더 그렇다. 힘들여 남 좋은 일만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년에는 귀족서리태, 선비콩, 아주까리밤콩 이 세 가지 콩을 각각 50알만 심자고 동생과 합의를 했다. 너무 많아봐야 힘만 들고 어차피 못 먹을 거 적당히 키우고 '관리'라는 걸 하기로 했다. 종자용으로도 딱 50개씩만 남겨 놓을 거다.
심을 때까지 이 마음이 변치 않아야 할 텐데 나중에 콩 맛있다고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나눔 할 용도로 더 심게 되는 건 아닐는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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