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따뜻해서인지 아직까지 호박덩굴은 너무 좋다. 덕분에 호박잎과 풋호박을 따가는 사람들도 기승이다.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사촌댁 아주머니가 호박잎을 좀 따 달라고 한다. 텃밭을 벗어나 길가로 뻗은 호박 줄기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호박잎과 풋호박을 하도 많이 따서 쓸만한 잎이 없단다. 한 뭉치 따줬더니 우리는 어쩜 이렇게 풋호박도 많고 호박잎도 좋냐면서 본인의 집 호박은 열매가 없다고 한탄을 하시며 간다. 사촌댁 아주머니는 예전의 우리의 이웃사촌이었던 관계로 나름 친한 분인데 작년에는 자기네도 호박 있다고 풋호박이나 호박잎을 안 가져가셨었는데 올해 우리에게 달라고 하는 걸 보니 호박 농사가 잘 안 되셨나 보다.
호박 도둑이 설쳐댄다. 벌써 여러 개의 늙은 호박을 도둑맞았다. 아무래도 풋호박을 여기저기 나눠주면서 호박을 노리고 텃밭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호박을 도둑맞은 이후로 풋호박은 수확을 그만뒀다. 그냥 놔뒀다가 지렁이 먹이로 줘야겠다. 자꾸 텃밭에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다. 그나마 호박은 우리가 안 아끼는 거라지만 드나들면서 작물들 밟고 다른 작물까지 손을 뻗치면 아주 곤란하다.
사람들은 호박을 많이 키우지만 제대로 익은 늙은 호박이 어떤 건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맷돌 호박의 경우 색이 노랗게만 되면 따오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잘 익은 호박은 호박 표면에 하얀 분(과분)이 많아야 한다.
청호박은 표피가 진녹색이라 색깔만으로는 익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잘 익은 청호박도 하얀 분이 덮이기 때문에(하얀 분이 다른 호박보다도 두껍게 덮인다) 호박 전체에 하얀 분이 덮이고 호박 줄기가 노랗게 됐으면 수확하면 된다. 생각보다 덜 익었을 때 호박을 따는 사람들이 많다. 도둑맞은 호박 중에도 제대로 안 익었는데 크기만 큰 호박이 있었는데 잘 익은 호박이 뭔지 제대로 모르면서 크기만 보고 훔쳐갔나 보다.
호박 도둑 덕에 본의 아니게 일찍 수확한 늙은 호박들이 집안에 가득이다. 호박죽을 안 먹으니 아무리 크고 잘 익은 청호박이라지만 쓸모가 없다. 그나저나 제대로 된 호박씨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호박이 일찍 착과 되기도 했고 가물어서 그런지 과분이 유난히 많다. 일찍이 호박죽을 끓여 먹었던 덕곡댁 아주머니나 갑임 아주머니가 맛있다고 연신 호박을 탐을 내지만 정작 우리는 늙은 호박을 도둑맞은 이후로 호박을 나눠주는 것도 꺼려진다. 작년과 올해 호박 나눔을 열심히 했다가 호박 도둑만 키운 느낌이다(작년에는 청호박이 낯설어서 아무도 안 가져갔었는데 맛본 사람들이 맛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녀서 올해는 부쩍 청호박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동생은 너무 짜증 난다며 내년에는 호박을 심지 말자고 한다. 그러게 내년에 호박은 쉬어야 할까?
호박을 심지 않겠다는 우리 얘기에 아랫집 아주머니가 아주 서운한 눈치다. 하긴 호박잎이며, 풋호박이며, 늙은 호박이며 많이도 얻긴 했지. 우리도 호박잎은 좀 아쉽기도 하겠다.
호박은 보통 4월에 심어서 10월이나 11월에 수확하는 재배기간이 꽤 긴 작물이라서 아무리 잘 안 먹고 아끼지 않는 늙은 호박이지만 도둑 맞고 보니 키운 공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허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희한하게 시골에는 별생각 없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람을 점점 각박하게 만든다.
하긴 꽤 많은 텃밭에 작물을 훔쳐가지 말라는 경고 팻말들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그만큼 작물 서리가 많아졌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남이 애써 키운 작물을 훔쳐가서 먹으면서 얼마나 잘 살 거라고 그러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곧 서리가 내릴 수도 있어서 호박은 완전히 끝물이다. 마지막으로 호박잎을 수확하고 곧 정리해야겠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올해도 청호박은 참 열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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