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처음으로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김장 채소들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야 달아진다. 그동안 날씨가 줄곧 따뜻하다 보니 우리 주변에서는 배추는 커졌는데 배추 맛이 안 들었다며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 처서가 지나면 김장 배추 모종을 정식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늦어도 9월 초순에는 거의 모든 집의 배추 정식이 끝난다. 그런데 우리는 올해 날이 너무 더웠던 탓도 있고 작년에 배추를 일찍 심어서 고생했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좀 늦게(9월 21일) 배추를 정식했었다.
올해는 날씨가 이상해서 9월 말까지 30도가 넘는 폭염이 지속됐었기 때문에 늦게 심었어도 배추가 영 시원찮게 자랐더랬다. 10월에 남들은 배추가 다들 좀 자란 상태다 보니 우리 텃밭의 배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잎도 몇 장 없는 상태로 땅에 붙어있는 배추를 보고는 배추를 너무 늦게 심었다고 저걸 언제 키워서 먹겠냐며 김장을 담을 수나 있겠냐며 걱정을 아끼지 않으셨었다. 그런데 11월이 돼도 날이 따뜻하니 벌레도 기승이지만 이미 알이 찬 배추들이 달아지지는 않고 몸집만 불려서 배추를 일찍 심은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되었는데 다행히 늦게 심은 우리 배추는 때에 맞춰 알맞게 자란 상태가 되었다.
이전만 해도 쌈배추로 밖에 못 먹겠다고 우리 배추를 걱정해 주던 사람들이 이제 텃밭에서 만나면 '배추가 좋네요 김장하기 딱 좋겠어요'라고 인사를 한다. 날이 따뜻해서 빨리 큰 건지 액비를 자주 줘서 빨리 큰 건지 잘 모르겠지만 김장할 시기에 수확할 수 있게끔 딱 맞춰서 자랐다. 배추를 많이 심은 건 아니고 제대로 안 자랄 것을 고려하여 좀 여유 있게 심었을 뿐인데 다들 잘 자란 데다 올해는 배추 5 포기로 김장을 해도 될 것 같다고 해서 본의 아니게 김장 배추는 또 차고 넘치게 생겼다.
무는 모종을 심지 않고 씨를 직파하는 작물이고 배추보다 추위에 약해서 일찍 수확해야 되기 때문에 보통 배추보다 1~2주 먼저 파종한다. 그래서 대부분 8월에 무를 파종하기 때문에 9월에 무를 파종하면 좀 늦은 감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텃밭일이 바빠서 밭을 못 만들었기 때문에 배추와 같이 9월 21일에 파종을 했으니 많이 늦게 심은 편이라 제대로 된 김장무를 얻겠다는 기대는 없었고, 시래기를 만들 무청과 요리에 쓸 무를 얻을 생각이었다. 김장 무는 농장 텃밭에 조금 일찍(9월 초순) 심어놓은 무가 있으니 그걸로 쓰면 될 것 같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었는데 자라는 모양을 보니 집 앞 텃밭의 무를 김장에 써도 전혀 지장이 없겠다.
날이 계속 따뜻했던 관계로 생각보다 빨리 잘 큰 것 같다. 무는 최저기온이 -1도 이하로 지속되면 수확해서 보관해야 되지만 예보상으로 볼 때는 12월에 수확해도 될 것 같다. 그때까지 조금만 더 자라렴.
농장 텃밭의 무는 너무 많이 커졌다. 시험 삼아 하나를 뽑아왔는데 한 번에 먹기에 많아서 아랫집과 반으로 나눴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무가 너무 달고 맛있다고 신기해하셨는데(다른 곳은 무가 단맛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자랑 같지만 지렁이 분변토에서 자란 무의 맛은 (물론 먹어본 사람만 알겠지만) 정말 월등하다. 정말 키우기 싫지만 배추와 무 농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감이며 맛이며 지렁이 분변토에서 키운 배추와 무는 다른 배추와 무와는 비교가 안되게 맛있다. 올해는 무도 정말 적게 심었는데 우리가 먹기에는 또 너무 많은 양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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